2023년 겨울 《노량: 죽음의 바다》를 가족과 함께 보고 나서 반응이 세 갈래로 갈렸다. 남편은 명량이나 한산보다 스토리가 약하고 지루했다고 했고, 중학생 아이는 엄청 재미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중간이었다. 초반은 분명 길게 느껴졌지만 해전이 시작된 뒤에는 영화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이렇게 반응이 달랐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니, 이 작품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온도 차가 유난히 큰 영화였다.
그런데 다시 볼수록 내게 남은 것은 거대한 함선도 백병전도 아니었다. 이미 일본군의 철수가 시작된 전쟁의 끝에서 이순신이 왜 마지막까지 싸워야 했는지, 그리고 승리를 눈앞에 두고도 자기 목숨보다 전투의 마무리를 먼저 생각했던 한 장수의 선택이었다. 《노량》의 마지막이 먹먹한 이유는 우리가 결과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보기 때문에, 그가 치는 북소리와 마지막 말이 오히려 더 무겁게 들린다.

■ 전반부는 느렸지만 해전이 시작되자 영화의 무게가 달라졌다
전반부는 솔직히 느리다. 조선과 명, 일본의 이해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인물이 오가고 통역이 반복된다. 역사적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자막으로 내용을 파악한 뒤 다시 통역을 듣는 장면이 이어지면서 긴장이 끊기는 순간도 있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왜 노량해전을 반드시 치러야 했는지에 대한 이순신의 절박함을 조금 더 밀도 있게 보여줬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해전이 시작되는 순간 영화의 성격이 달라진다. 앞에서 말로 설명되던 전쟁이 갑자기 사람의 몸과 소리로 바뀐다. 배가 부딪히고 포가 터지고 병사들이 뒤엉킨다. 이때부터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멋지게 싸우느냐가 아니다. 끝나가는 전쟁을 실제로 끝내기 위해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후반부의 긴 해전은 단순한 볼거리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승리에 가까워진다는 통쾌함보다 사람들이 얼마나 지쳐가고 있는지가 먼저 보인다. 아군과 적군의 배가 뒤엉키고 전투가 백병전으로 넘어가면서, 전쟁의 끝이라는 말이 결코 평화로운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가족의 반응이 갈린 것도 이 지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전투의 규모와 속도에 집중하면 후반부가 강하게 남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 전반부의 느린 호흡이 먼저 걸린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 차이가 단점처럼 느껴졌지만, 다시 생각하면 전쟁이 끝나기까지의 답답함과 마지막 전투의 폭발적인 감정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 김윤석의 이순신은 승리를 앞둔 영웅보다 지친 장수에 가까웠다
노량의 이순신은 앞선 두 작품의 이순신과 확실히 다르게 보였다. 《명량》의 최민식이 벼랑 끝에서 공포를 이겨내는 강한 장수였다면, 《한산》의 박해일은 냉정하게 판을 읽는 전략가의 인상이 강했다. 김윤석의 이순신은 처음부터 훨씬 늙고 지쳐 보인다. 처음에는 그 묵직한 말투와 표정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그 모습이 노량의 이순신에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승리를 통해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장수가 아니다. 긴 전쟁을 겪었고 개인적인 상실까지 감당했으며, 이제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럼에도 마지막 전투를 피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량의 이순신에게 전투는 영웅이 되기 위한 마지막 무대라기보다 자신이 맡은 일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책임에 가깝게 보였다.
이 차이 때문에 김윤석의 무거운 연기도 후반으로 갈수록 설득력이 생긴다. 젊고 날카로운 장수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겪은 사람이 마지막 남은 일을 끝내려는 얼굴이다. 화려하게 감정을 터뜨리지 않아도 표정과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난다. 이순신의 마지막을 다루는 영화에서 그런 피로는 오히려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이순신에게 승리 이후의 시간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관객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마지막이라는 전제 아래 바라보게 된다. 이순신이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자신에게 남은 것을 어디까지 내놓을 것인가를 보게 되는 것이다.
■ 끝없이 이어지는 북소리는 병사들에게 보내는 신호처럼 들렸다
그 감정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이순신이 직접 북을 치는 장면이었다. 처음 볼 때는 북소리가 너무 오래 이어져 다소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북소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북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배들이 뒤엉키고 지휘 체계가 흔들릴 수 있는 순간에도 북은 계속 울린다.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아직 지휘관이 그 자리에 있고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처럼 들렸을 것이다. 이순신이 직접 북을 친다는 것도 중요하다. 병사들에게 싸우라고 명령한 사람이 안전한 곳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같은 전장에 남아 있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소리가 길어질수록 나는 비장함보다 책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됐다. 자신이 시작한 전투라면 마지막 병사들이 싸우는 순간까지 자신도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태도다. 영화가 이 장면을 길게 끌고 가는 이유도 이순신의 영웅성을 과시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책임의 시간을 관객에게 체감시키려는 것으로 보였다.
백윤식이 연기한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 북소리에 점점 무너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는 처음에는 강한 적장으로 버티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전투 속에서 점점 소진된다. 이순신의 북은 조선 수군에게는 버티라는 신호지만 상대에게는 끝나지 않는 공포가 된다. 같은 소리가 누구에게는 의지가 되고 누구에게는 절망이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노량》의 전쟁은 선명한 승자와 패자의 구도로만 보이지 않는다. 물론 반드시 승패를 가려야 하는 전투지만, 화면 안의 사람들은 모두 전쟁에 소모되고 있다. 시마즈의 붕괴를 단순한 악당의 패배로 끝내지 않은 점도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 마지막 순간에도 이순신은 자신의 죽음보다 전투를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이순신은 전투 중 총탄을 맞는다. 우리는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영화가 반전으로 관객을 놀라게 할 수 없는 장면이다. 그런데 오히려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순간까지 이어진 행동들이 더 무겁게 쌓인다.
영화 속 이순신이 마지막 순간 먼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 전투가 흔들리는 일이다. “내가 죽었다는 걸 내지 마라”라는 말이 먹먹하게 들리는 것도 그래서다. 멋있는 유언을 남기려는 영웅이라기보다, 자신이 쓰러졌다는 사실 때문에 병사들의 사기가 무너질 것을 먼저 걱정하는 지휘관으로 보인다.
나는 이 장면에서 영화가 이순신의 죽음을 지나치게 장식하지 않은 것이 좋았다. 거대한 전투를 지휘했던 사람이지만 죽음의 순간까지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지 않는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전투가 끝날 때까지 뒤로 미루려 한다. 살아 있는 동안뿐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지휘관의 역할을 놓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마지막은 승리 장면인데도 이상하게 통쾌하지 않다. 승리를 완성한 사람이 그 결과를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먼저 들어온다. 수많은 함선과 병사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승리보다, 한 사람이 마지막까지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크게 남는다.
물론 《노량: 죽음의 바다》가 완벽한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반부의 외교 관계와 반복되는 통역 장면을 조금 더 압축했다면 후반부로 넘어가기 전 긴장감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반대로 후반부의 긴 전투는 단순히 규모를 과시하는 장면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길기 때문에 병사와 장수가 느꼈을 피로가 관객에게도 전달된다. 이 영화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길다’는 특징에서 갈라지는 셈이다.
결국 《노량: 죽음의 바다》를 보고 오래 남은 것은 대승의 통쾌함이 아니었다. 전쟁은 거의 끝나 있었지만 이순신에게는 아직 끝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북을 치고 전투를 지휘했으며, 죽는 순간에도 자신의 죽음보다 남은 싸움을 먼저 생각했다.
노량해전의 결과를 알고 영화를 봐도 마지막이 먹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리했기 때문에 감동적인 것이 아니라, 그 승리를 끝까지 책임진 사람이 자신의 목숨까지 그 뒤에 놓았기 때문이다. 《노량》이 오래 남는 이유는 거대한 해전의 규모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목숨을 뒤로 미룬 이순신의 선택에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보면 좋은 영화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전투를 전혀 다른 장르적 방식으로 보고 싶다면 《배틀쉽》도 함께 볼 만하다.
배틀쉽_아드레날린 터지는 해상전투 (해상전투, 바다와 우주, 블록버스터)
저는 원래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보다 바다가 나오는 영화에 더 끌리는 편입니다.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는 버릇이 어릴 때부터 있었거든요. 영화 배틀쉽은 그 두 가지, 우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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