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꿈을 심어준 이터널스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터널스를 보기 전까지 "어차피 마블 공식 아니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액션, 유머, 반전, 엔딩 크레딧 쿠키 영상. 그 익숙한 패턴을 기대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예상과 꽤 달랐습니다. 고대 유적과 신화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저로서는, 이 영화가 단순한 히어로물이 아니라 오래된 전설을 탐험하는 느낌에 훨씬 가까웠습니다.

서사 구조_기존 MCU와 어떻게 달랐나?
일반적으로 마블 영화는 단선적 서사, 즉 시작에서 끝까지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터널스는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 방식을 택했습니다. 비선형 서사란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조로, 관객이 시간대를 직접 조합하며 전체 그림을 맞춰가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구조가 생각보다 집중력을 많이 요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대부터 현대 런던까지 수천 년의 타임라인이 섞이다 보니, 처음 30분은 "지금 어느 시대지?"를 반복하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피라미드나 신전 같은 고대 유적에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는 오히려 그 혼란이 흥미롭게 다가왔지만, MCU를 가볍게 즐기려는 관객에게는 다소 피로감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명의 이터널스를 균등하게 소화하려는 앙상블(Ensemble) 구성도 눈에 띄는 시도였습니다. 앙상블이란 특정 주인공 한 명에게 서사를 집중하지 않고, 여러 캐릭터를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는 방식을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일부 캐릭터는 깊이 있게 그려진 반면 일부는 상대적으로 얕게 소비된 느낌도 있었는데, 이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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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주제, 히어로 영화에서 이 정도 깊이가 가능한가?
이터널스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꽤 묵직합니다. 창조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가, 아니면 피조물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가. 영화에서 이 갈등은 이머전스(Emergence)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터져 나옵니다. 이머전스란 지구 내부에서 새로운 천상족(Celestials) 티아뮤트가 탄생하는 과정으로, 이 과정에서 지구 자체가 파괴된다는 설정입니다. 이터널스들은 수천 년간 믿어온 사명이 사실은 이 탄생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저는 이 설정에서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선 무게감을 느꼈습니다. 악당이 나쁜 게 아니라, 애초에 시스템 자체가 인류의 존속보다 더 큰 목적을 향해 설계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니까요. 이는 자유의지(Free Will) 대 결정론(Determinism)의 충돌이라는 오래된 철학적 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자유의지란 개인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고, 결정론이란 모든 사건이 이미 정해진 원인에 따라 흘러간다는 관점입니다. 다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블 영화에서 이 정도 철학적 무게를 다룰 줄은 몰랐거든요. 영화가 모든 질문에 답을 내놓지 않고, 관객에게 판단을 맡기는 방식도 기존 MCU의 방식과는 달랐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모호함이 답답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여백이 오히려 영화를 더 오래 곱씹게 만들었습니다.
시각적 웅장함, 스케일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터널스의 시각적 스케일은 MCU 역대 최대라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천상족 아리솀(Arishem)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그 크기 자체가 압도적입니다. 이 스케일을 만들어낸 핵심은 CGI(Computer-Generated Imagery), 즉 컴퓨터 그래픽으로 생성한 디지털 이미지 기술입니다. 천상족의 거대한 형체와 우주적 배경은 CGI 없이는 구현 자체가 불가능한 장면들이었습니다. 감독 클로에 자오(Chloé Zhao)는 CGI에만 의존하지 않고, 가능한 한 실제 자연 배경을 활용한 촬영 방식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촬영된 장면들이 CGI와 어우러지면서 인공적이지 않은 질감을 만들어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스크린에서 확실히 체감이 됩니다. 특히 황금빛 사막과 아이큰(Ikaris)의 비행 장면이 겹치는 순간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터널스의 시각적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CGI로 구현된 천상족과 데비안츠의 압도적 스케일
- 실제 자연 배경(사막, 해안, 밀림)을 활용한 로케이션 촬영
- 각 이터널스 능력의 고유한 색채와 연출 방식
- 우주적 배경과 고대 문명을 교차하는 장면 구성
다양성과 포용성, 화제가 된 이유
이터널스는 MCU 역사에서 몇 가지 '최초'를 기록한 작품입니다. 청각 장애인 히어로 마카리(Makkari), 동성애자 커플인 파스토스(Phastos)와 그의 남편, 그리고 여러 인종으로 구성된 메인 캐릭터군이 대표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블록버스터 히어로 영화에서 이런 구성은 여전히 드물다고 인식되는데, 실제로 보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마카리의 경우, 청각 장애인 히어로를 단순히 보조 역할에 배치하지 않고 가장 강력한 능력인 초속력을 가진 캐릭터로 설정했습니다. 수어(Sign Language)로 대화하는 장면이 자막 없이도 자연스럽게 연출되어, 제가 보기에는 억지스럽다는 느낌보다 당연한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또한 아름답고 청순한 모습에 저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전투력도 엄청났는거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MCU의 다양성 확대 흐름은 할리우드 내 표현(Representation) 논의와도 연결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터널스의 시도는 단순한 마케팅 전략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터널스는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마블이 익숙함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쌓아 올리려 했다는 시도 자체는 충분히 의미 있었습니다. 어릴 적 고대 문명과 사라진 역사에 품었던 호기심이 스크린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게 특별한 한 편으로 남았습니다. MCU의 우주적 스케일에 관심이 있다면, 이터널스는 한 번쯤 직접 확인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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