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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

아비정전 리뷰 (발 없는 새·왕가위·장국영) 가장 슬픈 청춘의 이야기

by 두목73 영화창고 2026. 6. 6.

"발 없는 새는 평생을 날다가 딱 한 번, 죽을 때만 땅에 내려앉는다." 장국영이 아비정전에서 내뱉은 이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이게 무슨 이야기지?" 싶었는데, 이상하게 영화가 끝나고도 며칠 동안 그 눈빛과 대사가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아비정전
아비정전

발 없는 새, 처음엔 몰랐습니다

처음 아비정전을 봤을 때는 정말 어리둥절했습니다. 극적인 사건도 없고, 주인공이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지도 않습니다. 이른바 미장센(mise-en-scène) 중심의 연출 방식인데, 여기서 미장센이란 대사나 사건보다 화면 구도, 조명, 배우의 시선과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영화 기법을 뜻합니다. 왕가위 감독은 이 방식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본 건 2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발 없는 새" 대사가 그냥 멋있다고만 느꼈습니다. 장국영의 얼굴이 워낙 매력적이어서 그 외로움이 낭만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50대에 다시 봤을 때는 전혀 다르게 읽혔습니다. 그 대사가 자유의 선언이 아니라, 정착할 수 없는 인간의 결핍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느낀 감정이 완전히 달라진 경험은 이 영화가 처음이었습니다.

아비(장국영)는 수리진(장만옥), 루루(유가령) 등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지만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머물지 못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바람둥이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화는 아비가 친어머니에게 버려졌다는 상처, 그리고 그 어머니를 찾아 필리핀까지 떠나는 장면을 통해 그의 방황이 결핍에서 비롯되었음을 조용히 드러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방식의 서술은 처음 볼 때보다 두 번, 세 번 볼수록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아비정전이 다루는 감정의 층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버려짐의 상처: 친어머니에 대한 집착과 거부당함이 아비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 반복되는 이별: 사랑을 하지만 정착하지 못하는 패턴이 등장인물 전체에 반복됩니다.
  • 방관자의 그리움: 수리진과 루루, 경찰관(유덕화) 모두 아비를 중심으로 맴돌며 각자의 방식으로 방황합니다.
  • 죽음으로 완성되는 일대기: 결말에서 아비는 기차 안에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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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의 언어, 기차의 궤도와 선원의 항해

영화 후반부에 아비와 경찰관이었던 남자(유덕화)는 필리핀에서 우연히 재회합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짧지만, 그 장면 하나가 영화 전체를 압축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비는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냐"라고 묻고, 남자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다시 봤을 때는 그 짧은 침묵에서 두 사람이 공유한 시간의 무게가 느껴져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감동이었습니다.

왕가위 감독은 이 영화에서 내러티브(narrative) 구조를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유지합니다. 여기서 내러티브란 사건을 인과관계에 따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는 명확한 목표와 갈등, 해결이라는 내러티브를 따르지만, 아비정전은 이 구조를 거의 해체합니다. 관객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과 마주치게 됩니다. 결말에서 아비가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이 기차라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기차는 정해진 선로, 즉 궤도 위를 달립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음을 향해 가는 일생의 방향성과 닮아 있습니다. 동시에 경찰관이었던 남자가 꿈꾸던 직업이 선원이라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항해(navigation)란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방향을 조정하면서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이 두 이미지, 기차의 궤도와 바다 위의 항해가 겹쳐지면서 영화는 인간의 삶 자체를 은유합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누구도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누구도 완전히 떠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수리진은 아비를 잊지 못해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루루는 그리움을 안고 또 다른 사람을 향해 걸어갑니다. 저 역시 살아오면서 여러 인연을 맺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으면서 방황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 아비정전은 홍콩 반환(1997년) 이전의 불안감과 정체성 혼란을 담은 작품으로도 자주 분석됩니다. 개인의 방황과 시대적 불안이 한 인물 안에 포개진 구조, 그것이 아비정전이 세계적으로 재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장국영이 남긴 가장 슬픈 얼굴

장국영의 연기는 감탄을 하면서 몰입하게 만듭니다. 그는 아비라는 인물을 화려하면서도 공허하게 표현합니다. 이른바 서브텍스트(subtext) 연기라고 할 수 있는데, 서브텍스트란 대사나 행동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감정과 의미를 담는 연기 방식을 말합니다. 직접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눈빛이나 미세한 몸짓으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제가 직접 여러 번 다시 보면서 느낀 건, 같은 장면인데 볼 때마다 장국영의 표정에서 다른 감정이 읽힌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연기가 다층적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비정전은 1990년 홍콩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수십 년간 세계 각지의 영화 비평가들로부터 20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지속적으로 언급되어 왔습니다

 

아비정전은 결국 두 번 이상 봐야 제대로 보이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장면들이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아직 한 번밖에 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 더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발 없는 새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의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확인해 보시면, 그게 곧 지금 본인이 어디쯤 날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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