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홍콩 영화 리뷰

영웅본색, 주윤발의 쌍권총보다 오래 남은 건 왜 ‘의리’였을까

by 와우73 영화창고 2026. 9. 5.

 

성냥개비와 쌍권총보다 오래 남은, 《영웅본색》의 의리.

 

중학교 시절 처음 《영웅본색》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주윤발이었다.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긴 코트를 휘날리며 쌍권총을 쏘는 모습은 당시 기준으로 정말 충격적일 만큼 멋있었다. 나도 괜히 성냥개비를 입에 물어보기도 했고, 주윤발의 표정이나 걸음걸이까지 따라 하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적룡과 장국영도 강하게 남았지만, 처음 영화를 봤던 당시에는 확실히 주윤발의 존재감이 가장 컸다. 당년정이 흘러나오면 괜히 마음이 비장해지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분위기가 오래 남았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영웅본색》에는 화려한 총격전도 많고, 주윤발의 스타일도 강렬한데 내가 이 영화를 떠올릴 때 가장 오래 남는 단어는 결국 ‘의리’다. 왜 이 영화는 액션보다 의리의 영화로 더 오래 기억되는 걸까.

■ 마크가 멋있었던 이유는 총을 잘 쏴서만은 아니었다

주윤발이 연기한 마크는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홍콩 누아르의 영웅이다. 성냥개비, 코트, 쌍권총, 담배 연기까지 지금 봐도 한눈에 캐릭터가 잡힌다. 하지만 마크가 진짜 강하게 남는 이유는 스타일보다 선택에 있다. 그는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이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한다고 믿는 선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의리는 단순히 “친구니까 도와준다” 정도가 아니다. 자신의 인생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계를 외면하지 않는 선택에 가깝다. 처음 봤을 때는 주윤발이 멋있어서 마크를 좋아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다시 생각해보면 그 멋의 뿌리가 어디에 있었는지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결국 마크는 자기가 잘나서 영웅이 되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도 입고, 밀려나고, 무너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에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상태에서도 끝까지 자기 사람을 지키려 한다. 그래서 관객은 단순히 강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기준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사람을 보게 된다. 나는 이 부분이 《영웅본색》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손해 보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할 때가 많다. 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지키는 관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마크의 행동은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우리가 현실에서 쉽게 하지 못하는 선택을 대신 해주는 인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적룡·장국영과의 관계가 총격전보다 더 오래 남았다

《영웅본색》을 단순한 주윤발 영화라고만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적룡과 장국영이 함께 있기 때문에 마크라는 인물도 더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결국 세 남자의 관계가 있다. 범죄 세계에 들어간 형, 그 세계를 미워하는 동생,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의리와 우정을 지키려는 마크가 서로 얽혀 있다. 특히 형제 관계는 영화 전체의 감정을 끌고 가는 중요한 축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하면서도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한다. 여기에서 마크는 단순한 액션 캐릭터가 아니라 관계를 이어주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총격전 장면에서도 감정이 먼저 쌓이고 난 뒤 액션이 터진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배신과 상처가 쌓인 뒤 총을 든다. 이 순서가 있기 때문에 총알이 날아가는 장면이 단순한 볼거리로 끝나지 않는다. 오우삼 감독의 연출도 이 지점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슬로모션, 음악, 어두운 거리, 담배 연기 같은 요소들이 액션을 더 멋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물의 감정을 크게 확대한다. 총격전인데도 이상하게 비장하고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액션 장면을 감정의 폭발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그 과장 덕분에 오히려 인물들의 감정이 더 선명해진다.

■ 당년정과 성냥개비가 아직도 기억나는 이유

내가 《영웅본색》을 생각하면 당년정이 먼저 떠오르는 순간이 많다. 음악이 나오면 특정 장면보다도 그때 영화를 보던 내 모습이 같이 따라온다. 중학생이었던 시절, 홍콩영화가 지금보다 훨씬 가까웠던 때의 분위기까지 함께 떠오른다. 성룡, 주윤발, 장국영 같은 배우들이 단순한 외국 배우가 아니라 정말 친숙한 스타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영웅본색》은 조금 달랐다. 다른 홍콩 액션 영화들이 주로 통쾌함을 줬다면 이 영화는 보고 나서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친구와 형제, 약속, 배신 같은 감정이 액션보다 더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보면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유치한 부분도 있다. 남자들의 의리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그린 장면도 있고, 현실에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약점까지 포함해서 이 영화의 기억이 된다. 나는 이 점이 오래된 영화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작품 자체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영화를 처음 봤던 내 시간까지 같이 보게 된다. 성냥개비를 입에 물었던 기억, 주윤발을 따라 해보고 싶었던 마음, 당년정을 들으면 괜히 가슴이 뜨거워지던 느낌까지 영화에 붙어 있다. 그래서 《영웅본색》은 지금 다시 봤을 때 완벽한 영화라서 남는 게 아니다. 내 기억과 작품이 붙어 있기 때문에 더 오래 남는다.

■ 결국 영웅본색은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외로운지를 보여준다

《영웅본색》의 의리가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것을 멋있게만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의리를 지키는 선택은 항상 대가를 요구한다. 마크도, 적룡이 연기한 인물도 관계를 지키려다 계속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의리는 단순한 남자들의 멋이 아니라,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까지 포함한다. 이 점이 나는 지금 더 강하게 보인다. 어릴 때는 쌍권총을 든 주윤발이 영웅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은 그 사람이 왜 계속 자기 사람을 지키려고 했는지가 더 중요하게 보인다.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무너지는 순간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자신이 믿는 기준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크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려 했던 사람처럼 기억된다. 아쉬운 점도 분명하다. 감정이 너무 크고 남성 중심의 의리 서사가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보이는 순간도 있다. 지금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일부 장면은 촌스럽거나 과장됐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웅본색》이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히 총격전이 멋있어서가 아니다. 성냥개비와 쌍권총은 시대의 아이콘이었지만, 결국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서로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 관계였다. 나에게도 그렇다. 처음에는 주윤발의 멋 때문에 좋아했던 영화였지만, 지금 다시 떠올리면 결국 남는 건 의리다. 액션은 시대가 지나면 더 화려한 작품이 얼마든지 나오지만, 사람을 끝까지 지키려는 선택에서 오는 감정은 쉽게 낡지 않는다. 그래서 《영웅본색》은 홍콩 누아르의 대표작이면서 동시에, 왜 어떤 관계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지켜야 하는지를 묻는 영화로 아직도 기억된다.

■ 함께 보면 좋은 영화

《영웅본색》의 의리와 홍콩 누아르 감성을 이어서 보고 싶다면 《영웅본색 2》도 함께 보면 좋습니다.

 

영웅본색 2_이렇게 딱 한번만 해보고 싶다 (청소년기, 홍콩 누아르, 명장면들)

이렇게 딱 한번만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영화입니다. 조폭 영화가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극장에서 혼자 영웅본색 1을 봤습니다.

doomok73.com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doomok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