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원 없이 스파이더맨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톰 홀랜드뿐 아니라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까지 한 화면에 등장했으니, 오랫동안 스파이더맨 영화를 봐온 사람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극장에서 세 명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에는 이야기보다 반가움이 먼저 밀려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려보면 이상하게도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함께 싸우는 장면보다 마지막 카페 장면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MJ와 네드는 피터를 바라보지만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피터는 원래 자신을 기억하게 만들 생각으로 그들을 찾아갔지만 결국 준비했던 말을 꺼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 없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조용히 물러선다.
나는 이 순간이 《노 웨이 홈》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피터는 죽지 않았고 MJ와 네드도 살아 있다. 서로 바로 앞에 있는데도 함께했던 시간만 사라졌다. 피터 혼자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별보다 더 지독하다. 그리고 바로 이 선택 때문에 《노 웨이 홈》은 멀티버스 팬서비스를 넘어 피터 파커가 진짜 책임을 배우는 이야기로 남는다.
■ 처음에는 모두를 가지려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영화 초반의 피터는 아직 모든 것을 지키고 싶어 한다. 자신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일상이 무너지고, 그 여파가 MJ와 네드에게까지 미치자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마법이 시작된 뒤에도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만큼은 예외로 남겨두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 마음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너무 인간적이다. 피터는 세상을 구하는 스파이더맨이면서 동시에 친구와 연인을 잃고 싶지 않은 어린 청년이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선택은 멀티버스의 균열이라는 훨씬 큰 문제로 돌아온다.
여기서부터 피터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은 계속 커진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빌런들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들을 치료하려 한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선택은 메이 숙모의 죽음이라는 가장 큰 상실까지 불러온다.
처음의 피터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모두 지키려고 했다면 마지막의 피터는 정반대다. 더 이상 예외를 요구하지 않는다. 문제를 끝낼 수 있다면 자신이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까지 받아들인다. 영화 처음과 마지막의 선택을 비교하면 피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만난 진짜 이유는 함께 싸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의 등장은 당연히 이 영화 최고의 팬서비스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단순히 전투 인원을 늘리기 위해 등장했다면 지금처럼 오래 기억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을 연결하는 진짜 공통점은 능력이 아니라 상실이다.
각자의 세계에서 스파이더맨으로 살아온 세 사람 모두 누군가를 지키지 못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메이를 잃고 분노한 톰 홀랜드의 피터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에는 단순한 위로보다 경험에서 나온 이해가 있다. 자신들도 같은 길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 추락하는 MJ를 구하는 순간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에게는 과거에 구하지 못했던 그웬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MJ를 살려낸 뒤 잠깐 보이는 표정만으로 과거의 상처가 다시 떠오른다. 긴 설명이 없어도 그 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전 영화를 본 관객은 알고 있다.
그래서 세 스파이더맨의 만남은 과거 시리즈를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에서 끝나지 않는다. 먼저 상실을 경험한 두 사람이 이제 같은 상실 앞에 선 또 다른 피터에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구조가 된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왔지만 결국 같은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이다.
■ 가장 잔인한 장면에는 악당도 전투도 없었다
자유의 여신상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전투는 화려하다. 여러 빌런이 등장하고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동시에 움직인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내게 더 오래 남은 장면은 조용한 카페였다.
피터는 MJ와 네드를 다시 찾아간다.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고 함께했던 시간을 되찾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준비까지 한다. 그런데 MJ의 상처를 보고, 두 사람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본 뒤 생각을 바꾼다. 여기서 피터가 포기하는 것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다. 자신의 과거 전체와 연결돼 있던 관계를 스스로 놓는다.
이 장면이 잔인한 이유는 피터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MJ와 네드에게는 잃었다는 감각조차 없다. 하지만 피터는 함께 웃었던 순간도, 위험했던 순간도, 서로 했던 약속도 전부 기억한다. 바로 앞에 사랑했던 사람이 있는데 자신만 그 관계를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피터는 자신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그들을 위험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영화 초반이었다면 어떻게든 예외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마지막의 피터는 그 예외를 스스로 포기한다. 그래서 카페 장면은 거대한 전투보다 피터의 성장을 훨씬 분명하게 보여준다.
■ 스파이더맨이 영웅이 된 순간은 힘을 얻었을 때가 아니었다
《노 웨이 홈》은 멀티버스, 역대 빌런,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라는 엄청난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자칫하면 추억을 한꺼번에 꺼내놓은 팬서비스 영화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은 오히려 모든 것을 피터에게서 빼앗는다.
메이도 없고, MJ도 네드도 피터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전까지 그를 둘러싸고 있던 관계가 사라지고 작은 방에서 다시 혼자가 된다. 화려했던 MCU 스파이더맨을 거의 출발점으로 되돌려놓는 결말이다. 그래서 처음 봤을 때는 통쾌함보다 서운함과 쓸쓸함이 더 컸다.
물론 영화가 멀티버스와 과거 캐릭터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전 스파이더맨 영화들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몇몇 장면의 감정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팬서비스가 너무 강해 이야기의 집중력이 흔들리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선택만큼은 과거 작품의 인기에 기대지 않고 톰 홀랜드의 피터가 직접 감당한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의 진짜 결말이 멀티버스를 닫는 순간이 아니라 카페에서 돌아서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피터는 모두를 기억하지만 아무도 피터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도 다시 수트를 만들고 혼자 뉴욕의 밤으로 나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결국 스파이더맨이 영웅이 된 순간은 거미에게 물려 힘을 얻었을 때가 아니었다. 자신의 행복을 되찾을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포기했을 때였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가장 잔인한 선택이 동시에 피터 파커를 가장 스파이더맨답게 만든 선택으로 남는 이유다.
■ 함께 보면 좋은 영화
자신의 행복보다 다른 사람을 지키는 선택이 영웅을 어떻게 완성하는지 이어서 보고 싶다면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도 함께 볼 만하다.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_탈로칸이 안스럽게 느껴진다. (바다 공포, 마블 한계, 리리 윌리엄스)
탈로칸이 안스럽게 느껴집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해양 전투 장면이 이렇게 저를 흔들어놓을 줄 몰랐습니다. 대학 시절 제주도에서 스쿠버 도중 파도에 쓸려 바위
doomok7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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